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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좋아질거야주저리 주저리/사색노트 2020. 2. 24. 23:51
가끔씩 숨이 턱 하고 막힐 때가 있다. 이유 없이 숨이 차고, 가슴 속에 묵직한 찰흙 같은게 들어있는 것 처럼 답답할 때가 있다. 가만히 앉아서 내가 왜 이런가ㅡ 생각을 곰곰이 하다 보면, 문득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잔뜩 꼬인 축축한 실타래 하나가 진득허니 자리잡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직도 납득이 되지 않는 갈등, 미안했던 일, 사소하거나 굵직한 실수들, 그리고 타인에게 받은 자잘한 상처. 이 모든 것이 한 데 엉켜 볼링공 마냥 커져,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정말 너무나 간절하게 하고픈 것이 있다. 하염없이 걷기. 나는 머리가 아프거나 마음이 무거울 때면 집 근처 하천을 따라 그저 하염없이 걷곤 했다. 탁 트인 하늘과 흐르는 물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아무생각 없이 걷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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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글쓰기주저리 주저리/사색노트 2020. 2. 23. 23:59
군 생활을 하면서, 나는 일기를 쓰는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군대 특성상 사적 영역이란 있을 수 없기에, 조용히 홀로 생각에 잠기는 것은 오로지 잠 자기 전에만 가능했다. 침상에 누워 가만ㅡ히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지금 이 순간의 내 기억과 감정을 기록하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하고, 도무지 생각 만으로는 오늘 있었던 안 좋은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없기도 하다. 그럴 때 일기가 참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다. 나는 일기장을 펴 놓고 아무것도 안 한 채 멍 때리는 걸 좋아한다. 마구 끄적이고는 싶지만 좀처럼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 차마 첫 운을 떼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반대로 '그냥, 저 순수하고 하얀 공백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멍 하니 일기장의 하얀 공백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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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3] 전역하면 할 것들군필까지 D-100 (완) 2020. 2. 23. 16:35
어느 날,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본인은 문득 정년퇴직을 앞 둔 60대 중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대략적으로라도 전역 후의 인생설계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그런 조바심? 이렇게 매일 매일을 아무 생각 없이 보내다가는, 내 남은 청춘도 아무 생각 없이 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삶이란 정말 매력적이다. 걱정도 없고, 갈등도 없고. 하루 하루를 고사관수도 처럼 마냥 멍때리면서 사는 삶,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부잣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되고 싶다. 때 되면 밥줘, 똥 치워줘, 아무것도 안 해도 귀여워. 지능도 낮아서 번뇌 따위 없이 강 같은 평화를 누릴 것이다. 물론, 중성화 수술은 감수해야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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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4] 코로나가 부대로 쏘아올린 스노우볼군필까지 D-100 (완) 2020. 2. 22. 20:12
전역까지 세 달 남짓 남은 말년 병장 달걀쓰. 그는 눈물을 머금고 악착같이 모으고 또 모은 휴가로 남은 말년을 녹이고자 했다. 3월 중순에 14일 정도 나갔다가 복귀 후 일주일 참고, 또 14일 나갔다가 복귀 후 하루 참고, 바로 말출 15일. 참으로 훌륭한 계획이었다. ...? 이미 나는 1년 반이 넘는 군생활을 하면서 수 많은 통수를 통해 '인생은 절ㅡ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이미 배운걸 왜 이런 식으로 또 다시 복습을 해야 하는데? 응? 응?) 그 망할 살아있지도 않는 단백질 덩어리 따위가 내 휴가계획을 어그러뜨릴 줄이야. 어쨌든 저쨌든, 지난 20일 정경두 국방부장관은 '면회/외출/외박/휴가' 4종세트를 병사 간부를 막론하고 금지시켰고, '전역을 앞둔 병사의 휴가는 부대복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