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필까지 D-100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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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76] 그 모습도 나에요.군필까지 D-100 (완) 2020. 3. 2. 00:02
예전에 심한 자기 혐오에 빠진 적이 있었다. 사람들과 섞이기 위해 나의 본 모습을 철저히 숨겨야만 했고, 내 감정 조차도 오로지 관계를 위해 스스로를 속여야만 했다. 사람들이 내 본 모습을 알아채면, 모두 내게서 멀어질까봐 너무나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에 하나씩 하나씩 가면을 깎아 만들기 시작했다. 군대 특성상 모든 일상이 타인과 공유되기에, 나는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순간 조차 가면을 벗을 수가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면의 두께는 두꺼워져만 갔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날 거울을 봤는데, 문득 내 모습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웠다. 나는 너무나 '나'이고 싶었는데, 지금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겠더라.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나의 본 모습 조차 헷갈렸다. 보이는 건, 수 많은 가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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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0] 먹고 싶은 거군필까지 D-100 (완) 2020. 2. 27. 23:58
아아... 코로나때문에 부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됐고, 심지어는 배달음식도 금지됐다. 휴가 나가기 전까지 매 달 한 번 나가는 외박으로 심신을 달랬었는데... 지금은 바깥은 커녕, 한 달 넘게 바깥 음식을 못 먹게 생겼다. 지금 넘모 먹고 시픈 것들.list 닭강정 우리 집 도보 15분 거리에 '행복한 닭강정'이라는 조그마한 닭강정 집이 있다. 본인은 닭강정에 환장을 하는 고로 웬만한 닭강정은 다 먹어보았는데, 이 집 보다 맛있는 곳은 아직 못 봤다. 달짝지근하고 진ㅡ한 소스에, 숟가락으로 두드리면 '톡 톡' 소리가 날 정도의 극강의 바삭함. 입 안에 넣고 껍데기를 부수면, 육즙 가득 부드러운 닭다리살이 만족스럽게 입을 채워주는, 그런 닭강정. 닭강정 한 입, 차가운 맥주 한 모금 크으ㅡ 양꼬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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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3] 전역하면 할 것들군필까지 D-100 (완) 2020. 2. 23. 16:35
어느 날,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본인은 문득 정년퇴직을 앞 둔 60대 중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대략적으로라도 전역 후의 인생설계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그런 조바심? 이렇게 매일 매일을 아무 생각 없이 보내다가는, 내 남은 청춘도 아무 생각 없이 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삶이란 정말 매력적이다. 걱정도 없고, 갈등도 없고. 하루 하루를 고사관수도 처럼 마냥 멍때리면서 사는 삶,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부잣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되고 싶다. 때 되면 밥줘, 똥 치워줘, 아무것도 안 해도 귀여워. 지능도 낮아서 번뇌 따위 없이 강 같은 평화를 누릴 것이다. 물론, 중성화 수술은 감수해야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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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4] 코로나가 부대로 쏘아올린 스노우볼군필까지 D-100 (완) 2020. 2. 22. 20:12
전역까지 세 달 남짓 남은 말년 병장 달걀쓰. 그는 눈물을 머금고 악착같이 모으고 또 모은 휴가로 남은 말년을 녹이고자 했다. 3월 중순에 14일 정도 나갔다가 복귀 후 일주일 참고, 또 14일 나갔다가 복귀 후 하루 참고, 바로 말출 15일. 참으로 훌륭한 계획이었다. ...? 이미 나는 1년 반이 넘는 군생활을 하면서 수 많은 통수를 통해 '인생은 절ㅡ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이미 배운걸 왜 이런 식으로 또 다시 복습을 해야 하는데? 응? 응?) 그 망할 살아있지도 않는 단백질 덩어리 따위가 내 휴가계획을 어그러뜨릴 줄이야. 어쨌든 저쨌든, 지난 20일 정경두 국방부장관은 '면회/외출/외박/휴가' 4종세트를 병사 간부를 막론하고 금지시켰고, '전역을 앞둔 병사의 휴가는 부대복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