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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좋아질거야주저리 주저리/사색노트 2020. 2. 24. 23:51
가끔씩 숨이 턱 하고 막힐 때가 있다.
이유 없이 숨이 차고, 가슴 속에 묵직한 찰흙 같은게 들어있는 것 처럼 답답할 때가 있다.
가만히 앉아서 내가 왜 이런가ㅡ 생각을 곰곰이 하다 보면, 문득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잔뜩 꼬인 축축한 실타래 하나가 진득허니 자리잡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직도 납득이 되지 않는 갈등, 미안했던 일, 사소하거나 굵직한 실수들, 그리고 타인에게 받은 자잘한 상처. 이 모든 것이 한 데 엉켜 볼링공 마냥 커져,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정말 너무나 간절하게 하고픈 것이 있다.
하염없이 걷기.
나는 머리가 아프거나 마음이 무거울 때면 집 근처 하천을 따라 그저 하염없이 걷곤 했다.
탁 트인 하늘과 흐르는 물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아무생각 없이 걷다 보면 우울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아무생각 없이 걷고 또 걷다 보면 머릿속을 지저분하게 부유하던 잡생각들이 조금씩 가라앉고, 점점 내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볼 수 있더라. 그렇게 내가 알지 못했던 내 상처들을 조심스레 살펴볼 수 있었다.
조금씩 변하는 주변을 찬찬히 감상하며 걷다 보면 마음이 참 차분해진다.
조금 전 일상에서 그렇게 심각하고 힘들었던 것들이,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내가 열 낼 것도 아니였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긴장 속에서 팽팽히 당겨져 꼬여있던 내 마음 속 실타래가 조금씩 느슨해지면서 한 가닥, 한 가닥 풀어내어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부딛히며 살아가는 일상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만성적인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스스로를 조이고 팽팽하게 만들곤 한다. 목덜미를 조이는 넥타이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상 밖에서조차 마음 속 실타래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그 실타래는 점점 커져 가슴을 짓누르고 점차 썩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마음이 답답할 땐 걷자. 그냥 아무생각도 하지 말고 바람 좀 쐐자.
걷다 보면 좋아질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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