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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스러져도, 그들의 삶은 이어질 것이다" [NYTimes]
    어 나 이거 알아/뉴욕타임즈에서 전해드립니다: 2020. 5. 28. 11:34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모두의 재난이다. 모두가 고통받고, 또 모두가 미래를 위해 버티고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수많은 이의 생명을 앗아가는 와중에도, 최전선에서 혹은 뒤편에서 끊임없는 사투를 벌이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있어 사회는 미래를 희망할 수 있었다.

     

    이번 기사는 팬데믹 사태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영양사, 요리사들의 이야기이다.

     

     

     

     

     


    1918년 팬데믹, 아픈 이들을 먹여 살렸던 그녀. 그녀의 유산은 계속 살아 숨 쉰다.

    "She Fed Her Sick Flock During the 1918 Pandemic. Her Legacy Lives On."

     

     

     

     

    출처: pixabay.com

     

     

     

    기사는 과거 1918년에서 1919년까지 세계적으로 독감이 창궐했던 때에, 아일랜드 해안을 따라 멀리 떨어진 반도의 집까지 굶주린 이들을 위해 음식을 싣고 날랐던 한 여성, 줄리아 닐 설리반(Julia Neill Sullivan, 71 또는 72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곳' 할머니(Nan the point), 줄리아 닐 설리번(Julia Neill Sullivan)

     

    그 집은 그녀의 13명 자녀 중 막내인 메리(Mary)가 그의 남편 패디 드와이어(Paddy Dwyer)와 함께 10살이 채 되지도 않은 7명의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고, 메리는 남편과 함께 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했던 독감이 5천만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놀랍지도 않았던 그때, 언제나 대지와 바다에서 음식을 얻어왔던 그곳의 가족들은 너무나 쇠약해진 나머지 음식을 모으거나 샘에서 물을 긷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줄리아는 매일매일 그들을 위해 삶은 감자, 양배추, 고등어 등의 식사가 들어있는 냄비를 들고 그들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집 앞의 돌 위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1/4마일 떨어진 그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손자들에게 '그 곳' 할머니(Nan the point)로 불렸던 그녀는 그다음 날에도, 더 많은 음식을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 있다.

     

     

    병원 조리사 글렌다 찰스(Glenda Charles, 58세)의 이야기

     

     

    이미지 출처: NYTimes 기사 'She Fed Her Sick Flock During the 1918 Pandemic. Her Legacy Lives On.' [www.nytimes.com]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요리사 복장으로 갈아입고, 캄캄한 새벽을 뚫고서 네 블럭이나 떨어진 컬럼비아 대학 부속 병원으로 향하는 글렌다 찰스(58). 공식적으로 그녀의 업무가 시작되는 새벽 5시보다 30분 일찍, 그녀는 9층의 조리실에서 계란, 오트밀, 프렌치 토스트 등의 재료를 계량한다.

     

    최근 들어 그녀의 근무환경은 상당히 악화됐다. 그녀의 근무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Covid-19 팬데믹 사태는 그녀의 동료를 보통 때 보다 3배가량 줄어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요리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트레이를 손본다. 그녀의 하루 노동시간은 12~14시간에 육박한다.

     

    그녀는 일주일에 며칠이 있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3월에 조지타운(Georgetown)에 있는 집으로 떠날 계획이었던 그녀의 휴가 계획은 취소됐다. 그녀는, 팬데믹 이후 지금껏 고작 2번의 토요일에만 쉬었을 뿐이다.

     

    그녀에게는 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3명의 아이와 8명의 손자가 있다.

    "처음 첫 주 동안, 저는 공황발작을 겪었어요. 하지만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라고 되뇌었죠."

     

    그녀는 결심했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하자. 환자들이 올바른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도록.'

     

     

     

    병원 식품 라인 종사자 사라 카우르(Sara Kaur, 46세)의 이야기

     

     

    이미지 출처: NYTimes 기사 'She Fed Her Sick Flock During the 1918 Pandemic. Her Legacy Lives On.'  Ricardo Monge/NYC Health + Hospitals, [www.nytimes.com]

     

     

     

    그녀의 일과는 아침 6시, 벨뷰(Bellevue)에 위치한 병원의 식품 생산라인에서 시작된다. 그녀의 아들이 병원에서 태어난 후, 그녀의 고향 펀자브(Punjab)에서 비롯된 본인의 억양을 고치기 위해 영어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이곳에 취직했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 몸은 정상적으로 일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음식이 필요해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있답니다." 

     

    인도 음식 레스토랑에 종사했던 그의 남편은 3월에 해고됐다. 두 명의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했다. 그녀는 일터로 나아가야만 한다.

     

    당뇨환자가 적절한 음식을 받았는지, 저염식은 올바른 환자에게 전달됐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그녀는 600명분의 음식 트레이를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must be eyeballed).

     

    그녀는 말한다. "가족들은 이곳에 오지 못하지만, 여기가 우리의 집이에요.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가 가족이죠."

     

     

     

    병원 영양사 미셸 머피 트리파리(Michele Murphy Trifari, 65세)의 이야기

     

     

    이미지 출처: NYTimes 기사 'She Fed Her Sick Flock During the 1918 Pandemic. Her Legacy Lives On.'  Mara Barney, [www.nytimes.com]

     

     

     

    지난 2월부터, 자신이 음식·영양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브롱스(Bronx) 소재의 링컨 의료/정신 건강 센터(Lincoln Medical and Mental Health Center)에 이번 팬데믹 사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200명 이상의 환자가 있지.'

     

    '하지만 만약 트럭 기사들이 병에 걸려서 음식을 받지 못한다면?' 그녀는 물과 전기가 끊기더라도 환자들을 먹일 수 있도록 캔 음식(Canned foods)을 비축(laid in)해둔다.  

     

    다른 문제도 있다. 만약 환자들이 격리된다면, 그땐 일회용 접시와 식기류만 사용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때를 대비해 물건을 주문해 둔다. 그리고 Covid-19는 호흡기 질환이므로, 환자들은 입으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튜브 급식에 필요한 물량을 비축해둔다.

     

    그녀는 말한다. "갑자기, 어딘지도 모를 곳(out of nowhere)에 중환자실(I.C.U.) 병상이 34개에서 140개로 늘어났어요."

     

    도시가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그녀는 간호사와 소방관의 다섯 자녀 중 장녀로 키워진 퀸즈(Queens)에서 브롱스로 운전한다. 그녀의 병원 동료들은 캄캄한 새벽에도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출근율은 95% 이상이라고 한다.

     

     

     

    다시, 그녀로

    그녀는, 밝혀진 바에 따르면 7명의 손자를 지켜냈다고 한다. 그녀의 딸 메리, 그리고 그의 남편 패디 드와이어는 살아남아 5명의 아이를 더 가졌다. 그렇게, 한집에 살았던 그녀의 자손들은 45명이 되었다.

     

    우리가 모두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이 오더라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햇살 속에서 걸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 시간 동안 아픈 이들을 먹이고, 치유하고, 편안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이 기사의 필자)는 그녀가 돌 위에 음식이 담긴 냄비를 올려놓았던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던 그 집의 45명의 자손 중 하나다.

     

    클린다 찰스와 사라 카우어, 미셀 머피 트리파리, 그리고 그녀. 이들이 오가는 발소리를 들어보아라. 해가 채 뜨기도 전에 행진했던 그 삶을 말이다. 

     

     

     

     

     


     

    이 기사를 읽고 난 후,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쉴 틈 없이 최전선에서 뛰어다닐 질병관리본부 및 관계부처 공무원과 의료업계 종사자들이 떠오르고, 국민들을 위해 무대 뒤에서 땀 흘릴 수많은 이름 모를 의인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사회는 사람들로 인해 돌아간다. 그리고 사회를 구동하는 이들은 사명의식과 함께 어둠을 밝힌다. 이들의 삶은 성직자와 같고, 어머니와 같으며, 가히 성자와도 같으리라.

     

     

     

     

     

     

    #덕분에

    #의료진 덕분에

    #모두의 덕분에

     

     

     

     

     

     

     

     

     

    She Fed Her Sick Flock During the 1918 Pandemic. Her Legacy Lives On.

    An old woman leaves a pot of food on a rock outside her daughter’s house. A century later, others roll trays of meals to people with Covid-19.

    www.ny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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