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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두근이 어디있는지 알겠더라구... [달고나 커피]
    있어빌리티 라이프/나 이거 만들 줄 알아 2020. 3. 24. 10:30

     

     

    전역 전 휴가를 나온 말년 병장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휴가를 나왔어도, 이건 뭐 전역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완전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시간은 많고, 할 건 없고(그렇다고 공부는 하기 싫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창의적이고 창조적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있을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던 중, 눈에 들어온 이것.

     

     

    출처: 왼쪽부터 'nino's home', 'seodam', '한세' 유튜브 채널 갈무리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해진 요즘, 외출을 자제하는 '방구석 인싸'들이 너도 나도 앞다투어 만들어봤다는

    이른바 'OO번 저어 만든 커피' 달고나 커피 되시겠다.

     

    본의아니게 코로나 덕에 남들에게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합법적 집돌이'가 된 본인으로서,

    이미 유행이 지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뒤 늦게 방구석 인싸 대열에 합류해보고 싶었다.

     

     

     

     


    달고나 커피

    Beaten Coffee


     

    갑자기 '달고나 커피'가 왜 유행을 탔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미국(Beaten coffee, Indian cappuccino)이나 스페인(Café Batido a mano) 등 이미 해외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커피인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Beaten coffee라고 하는데 'Beaten'가 두들기다, 비트를 맞추다의 'Beat' 과거분사형인 만큼

    그냥 겁나게 때려 섞어 만든 커피 쯤 이해하면 되겠다.

     

     

     


    Ingredient


    분말커피 다섯 봉, 백설탕 5큰술, 그리고 뜨거운 물 5큰술. 끝! 와우!
    (원래는 진짜 달고나를 만들어서 잘게 부순 뒤 위에 데코레이션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어우 귀찮아.)

     


     

    준비물이랄 것 까지는 없지만,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한다.

     

    커피보다 설탕이 더 많아보이는 것은 그대의 기분 탓.

     

    분말 커피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G7 커피를 준비했다. 인스턴트 커피 치고는 향이 풍부하고 깔끔하다. 웬만한 인스턴트 커피는 다 먹어봤다고 굳이 자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장 원두 커피의 향과 가까운 인상을 받았다.

    집에 이것 밖에 없기도 했고.

     

    스테인레스 그릇에 모아 둔 재료에 뜨거운 물을 5큰술 넣어준다. 굳이 잴 필요 없이, 커피와 설탕의 동량 만큼 넣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나는 시작하기에 앞서 '섞다가 귀찮으면 핸드믹서 써야지'라는 나약한 마음을 지니고 시작했기 때문에 계량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남은 건, 그냥 섞는거다. 

     

     

     

    프레임이 낮아서 거품기가 흐리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챡챡챡챡챡챡...

     

    섞는 동안 아무 생각이 안 든다.

    그렇게 10분 후, 가망이 없어보이는 스뎅 그릇을 내려다 보며 레시피에 대한 의심이 피어오른다.

     

     

     

    이 쯤 됐을 때 가장 현타가 크게 왔었다.

     

    챡챡ㄱ챡ㅊㅊㅑㄱ챡챡ㅊ챡....

     

    점차 초점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이 곳엔 오직 끝 없는 회전운동과 관성, 고통에 찬 이두근 뿐.

     

    문득, 갑자기 이 행위에 대한 매우 매우 본질적이고 회의적인 질문이 떠오르려 하지만, 이미 거품기와 스뎅그릇과 이두근이 물아일체가 되어 무아지경에 다다른 후이므로 개의치 않는다.

     

     

     

    제법 달고나 비슷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 속 번뇌를 가라앉혀 평정심에 다다르는 순간,

    어느 새 손 끝에서 느껴지는 커피의 질감이 무뎌지기 시작한다.

    거품기를 들어올리자 머랭의 뿔 처럼 커피가 모양을 유지한다. 색도 처음과는 다르게 밝은 빛을 보인다. 한 껏 펌핑된 오른팔도 보인다.

     

    뿌듯한 마음을 억누르고, 혼신을 다 해 막판 머랭질에 돌입한다. 

     

     

     

    굳이 영상으로 남기는 이유는 남들이 이 개고생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오우... 고져스...

    위 사진처럼 거품기를 들어올렸을 때 뿔이 높게 솟으면 합격.

     

    이제 이쁜 컵에 우유를 따른 뒤, 만 번의 휘적임이 결코 헛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며 숟가락으로 퍼 올려 이쁘게 세팅한다. 숟가락으로 퍼 올린 뒤 뒤적거리는 것 보다는,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표면을 휘저어가며 모양을 잡아가는 편이 수월하다.

     

     


     

    - Finish -

     

    뭔가가 떠오르는 비주얼이다.

     

     


     

    맛은... 솔직히 표현하자면 

    삼각뿔 모양 커피 맛이 난다. 그것도 아주 쓴.

     

     

    당연한게, 커피를 5봉이나 썼으니까.

    엄청나게 공을 들여 만든 커피크림은 우유에 잘 녹지도 않고, 엄청 진해서 우유 한 잔 당 커피크림 한 스푼 정도면 적당한 것 같다.

     

    뭐, 그러면 어떤가. 애초에 맛과 편의를 기대하며 시작한 것이 아닌데.

     

     

     

     

     

     

    벌써 벛꽃나무에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루 빨리 상황이 나아졌으면 좋겠다. 집구석에 갖혀 봄 마저 빼앗길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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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Egg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