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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 주저리/사색노트 2020. 8. 4. 02:27
불 꺼진 방, 닫혀있는 방문.
새벽 빛 처럼 푸르스름한 저녁 하늘.
깊은 바닷속 칠흑까지 미처 닿지 못해 오로라처럼 일렁이듯 걸려있는 빛의 잔향처럼
창문으로부터 방 안의 심부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쪽빛 그림자.
월광 아래 모든 것들이 탈색되어 창백히 실루엣으로나마 존재하듯이
방 안은 온통 푸르스름하게, 테두리 없이 단색으로서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방문 너머로 가만가만 들려오는 TV소리,
창문 너머로 조금씩 잦아드는 빗소리와 양철 창틀을 두드리는 낙숫물의 금속성 파열음.
노면의 물웅덩이를 가르는 타이어, 멀거니 들려오는 힘겹게 토해내는 듯 한 버스의 배기음.
이미 식어버린, 달곰하니 향긋한 밀크티를 머금고 검푸른 천장의 실루엣을 응시하며 가만히 누워있자니
문득 3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의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훗날 한없이 그리워질 피난처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세이브포인트를 만들 수 있다면, 꼭 저장하고픈, 그런 순간.
"Save poi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