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그런 순간들이 있다.주저리 주저리/사색노트 2020. 3. 27. 16:16
No.1 In F Minor BWV 1056 - 2nd Movement 'Largo' 가끔씩, 영원히 기억하고픈 순간들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어떻게든 두 눈에, 가슴에, 뇌리에 새겨두고자 잠시 멈춰서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순간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드는 순간조차 바로 어제 일어났던 일인 양 그 날의 감정, 향기, 온도, 촉감 하나 하나가 생생하기를 간절히 빌던 순간이 있다. 모든 것이 새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기도, 세상이 눈물에 잠기고 무너져내리기도, 살갖을 애는 분노에 전율하기도 했던 나날들. 시간이 지날 수록 풍화되어 옅어지고 희석되는 기억의 덧 없음을 한 없이 증오하고 원망하며 황망히 천장만을 쳐다보곤 한다. 유성 빛 무지개를 띄며 방울..
-
[D-76] 그 모습도 나에요.군필까지 D-100 (완) 2020. 3. 2. 00:02
예전에 심한 자기 혐오에 빠진 적이 있었다. 사람들과 섞이기 위해 나의 본 모습을 철저히 숨겨야만 했고, 내 감정 조차도 오로지 관계를 위해 스스로를 속여야만 했다. 사람들이 내 본 모습을 알아채면, 모두 내게서 멀어질까봐 너무나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에 하나씩 하나씩 가면을 깎아 만들기 시작했다. 군대 특성상 모든 일상이 타인과 공유되기에, 나는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순간 조차 가면을 벗을 수가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면의 두께는 두꺼워져만 갔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날 거울을 봤는데, 문득 내 모습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웠다. 나는 너무나 '나'이고 싶었는데, 지금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겠더라.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나의 본 모습 조차 헷갈렸다. 보이는 건, 수 많은 가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