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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의 부장들> 상영관에서의 만족으로 끝내서는 안 될 이야기 (약 스포)
    있어빌리티 라이프/나 여기 가봤어 2020. 2. 11. 03:45

     

    모처럼 휴가를 나왔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가택연금을 당한 본인.
    코로난지 코지만지 뭐시기때문에 소ㅡ듕한 휴가를 골방에서만 틀어박혀 보내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자린고비 심정으로 영화관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

     

     

     

     

     

     

     

     

     

     

     

    알박기!

     

     

    이시국 알고리즘에 따라

    사람 없는 곳=안전한 곳
    텅텅 빈 영화관=사람 없는 곳

    따라서
    영화관=안전한 곳 ㅇㅇ

     

    그리하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게 된 것이다.

     


     

     

    와 부제 라임 보소

     

     

    김규평(중앙정보부장, aka 김부장): 이병헌
    곽상천(대통령 경호실장, aka 곽실장): 이희준
    박통: 이성민
    곽병규(전 중앙정보부장): 곽도원
    데보라 심(로비스트): 김소진

     


     Synopsis 

     

    때는 그 유명한 10.26 사태, 그러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4공화국 독재의 끝을 달리고 있을 무렵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권총으로 박통을 암살한 사건.

    바로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의 '40일'을 재구성한 '팩션(Faction)'되시겠다.

     

     

     

    누구나 한 번이라도 봤을 그 사진

     

     

     


     발단 

    5.16 군사정변 이후 3번이나 헌법을 고쳐가며 무소불위의 경지로 군림하던 박통은 악화되는 민심과 국제정세 속에서 한번 더 정권을 이어가고자 스스로에게 헌법을 초월하는 권한을 부여한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그 즈음, 한때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곽병규가 미국으로 망명해 미 하원 청문회에서 박통의 비윤리적인 행보와 부패한 정치 시스템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를 터뜨렸고, 급기야 박통의 온갖 민낮이 담긴 회고록까지 집필에 나서면서 박통과 중앙정보부는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된다.

     

    안 그래도 민심이 땅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마당에, 코리아 게이트와 함께 박통의 18년 독재행위에 대한 미국의 불만이 날로 커지면서 박통의 신경은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상태.

    그런 박통의 양 옆에는 두 남자가 있었으니...

     

     

     

    곽상천 경호실장(좌)과 김규평 중앙정보부장(우)

     

     

     두 남자의 대립구도 

    "사람은 인격이라는게 있고 국가는 국격이라는게 있어."
    "각하가 국가야. 국가 지키는게 내 일이야."

    바로 김부장과 곽실장.

    박통이 중요한 사안을 처리하거나 결단을 내릴 때마다 매 번 두 남자와 상의할 정도로 신임을 얻는 그들은 박통의 왼팔과 오른팔이다.

    문제는, 둘의 성격과 일 처리 방식이 너무나도 달라 항상 의견충돌이 생긴다는 것.

    김부장은 미국과의 관계와 야당의 움직임, 민심의 동정까지 고려하며 온건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반면, 곽실장은 대통령 경호를 명목으로 청와대 앞마당에 탱크까지 몰고오는 과격파. 또 박통의 비위를 맞추는데 혈안이 되어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OK인 사람이다.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는 와중에도 박통의 최측근으로서 곽실장과 김부장의 충성경쟁은 갈 수록 격화되고, 점차 박통은 듣기 좋고 달콤한 이야기만 골라서 하는 곽실장을 가까이 하게 되면서 중앙정보부장으로서의 김규평의 위신은 점차 추락하게 된다. 결국 점차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배제되면서 김실장은 큰 상실감과 회의감에 빠진다.

     

    박통과 곽실장 둘이서 꽁냥꽁냥하는 사이 국정운영은 갈 수록 비민주·비윤리적으로 흘러가고, 급기야 부산에서 일어난 유신 반대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기 위해 곽실장이 제안한 계엄령까지 승인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위 규모의 부산-마산 확대 위험성을 근거로 극구 반대했던 김부장의 의견은 가볍게 묵살.

     

     

     막다른 길목 

    점차 김부장은 박통의 눈 밖에 나게 되고, 거기에 곽실장의 이간질까지 더해지면서 김부장의 안위는 점점 위태로워지는 상황. 이제 그의 마음에는 한 가지 무서운, 그러나 차가운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그는 문득 옛 동료이자 전우였던 전 중앙정보부장 곽병규의 말이 떠오른다.

     

    "각하는 2인자를 살려두지 않아"

     

    과거 몸과 마음을 바쳐 박통에게 충성했던 곽병규. 2인자로서 실세를 떨쳤던 그의 끝은 어땠는가.

     

     


     보고 어땠냐면 

    한 인간으로서의 김규평

    18년 독재의 균열과 추락하는 민심, 고장난 브레이크. 비정상적인 충성경쟁과 인간성의 실종.

    그 속에서 점차 뒤틀려가는 한 인간이 느꼈을 감정을 영화를 보는 내내 저릿하게 느꼈다.

    중첩되는 분노와 절망, 그리고 고립감. 파국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느꼈을 처절한 무력감이 그를 살인으로 이끌었을까.

     

     

    영웅적 묘사

    상영관을 나서는 뒷 맛에 히어로물의 인상이 미묘하게 남는 부분은 아쉬운 점이다. 철저히 악인으로 묘사된 곽실장·박통의 성향과 명확히 대치되는 김실장의 대립구도가 '흑과 백'처럼 강하게 묘사됨과 더불어 김부장의 분노와 절망이 점차 누적되면서 클라이막스로 이어지는 점이 그렇다.

     

    물론, 이를 다소 완화하려 노력하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영화 후반부에 김규평이 '혁명의 배신자를 처단한다'는 말을 하며 박통의 머리를 쏘는 장면. 이후 권총으로 확인사살을 한 김규평은 뒤돌아서서 방을 나서려다 피웅덩이를 밟고 우당탕 넘어진다. 허둥지둥 일어난 그는 놀란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이미 확인사살한 박통을 잠시 노려보다 허둥지둥 다시 방을 나선다.

     

    사실 단편적으로 보면 '박통'이라는 괴물을 죽이고 폭거를 저지한 김규평의 모습은 자못 영웅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중앙정보부장으로서 반인륜적으로 권력을 휘둘렀던 그 또한 어떻게 보면 괴물 아닌가. 그를 박통, 곽실장과 같은 선 상에 두고 봤을 때와 데보라 심과 같은 선 상에 두고 봤을 때 느껴지는 인상의 온도차는 명백히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웅스럽게 박통을 죽이고 도망치려다 민망하게 넘어지고 허둥지둥 일어나는 장면을 넣음으로서 과도하게 미화되는 부분을 조금 환기시키려 하지 않았나 싶다.

     

     

    '팩션'과 '역사왜곡'의 바운더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원작자 김충식 교수는 "영화의 80%는 팩트지만, 20%는 허구"라고 밝혔다. 동명의 원작은 김 교수가 과거 동아일보 기자시절 신문에 연재했던 작품이기 때문에 최대한 팩트만을 위주로 썼다고 한다.

    이를 영화화하면서 극적 긴장감을 위해 각색된 사실들이 몇 있는데, 이는 아래와 같다.

     

    1. 김재규와 친구로 묘사된 김형욱(곽병규)은 실제로는 1살 차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재규는 군대 동기이고, 김형욱과 김종필(전 국무총리)은 육사 동기생이다.

    2. 극 중 김부장은 박통과 같이 한강다리를 건너면서 혁명(5.16군사정변)의 핵심 인물로 묘사되었는데, 실제로 김재규는 한강 다리를 건너지 않았으며 혁명의 주체도 아니었다.

    3. 쏟아지는 빗속에서 김부장이 궁정동 안가에 몰래 들어가 도청하는 부분 또한 픽션이다.

     

    위와 같은 픽션이 존재하면서 일각에서는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극 중 김부장은 '우리가 왜 혁명을 했느냐'며 혁명주체로서 박통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고, 그 감정이 거사를 일으키는데 명분을 제공하는 것처럼 묘사됐다.

     

    나는 솔직히 말해 영화의 몰입도를 위해서, 극중 긴장감을 위해서 약간의 픽션을 가미하는 것에 대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다큐멘터리'와 '필름'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고, 역사의 한 사건을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다면 약간의 MSG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만, 문제는 이 영화의 핵심 내용이자 다루고자 하는 바인 '왜 그는 박통을 쐈는가'는 아직도 양극단으로 평가가 갈리는 민감한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거니와, 김부장이 박통을 쏜 직접적인 동기를 유추하는 과정에서 그 첫 단추에 픽션이 섞여들어갔다는 점. 바로 그 부분이 중요 팩트를 건드리지 않는 바운더리 내에서 픽션을 가미해야 하는, 이 영화가 내건 '팩션'이라는 장르에 대해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과연 어디까지 팩트를 건드려야 역사왜곡이고 팩션인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다. 비판받아 마땅한 부분은 비난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작품 전체의 가치를 통째로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실수는 누구나 하지 않나.

     

     

    이렇든 저렇든

    캐스팅된 배우들의 연기력과 영화의 몰입감은 최고였다. 체감 런타임은 1시간 반 정도였는데, 2시간짜리 영화 치고 단 한번도 지루하거나 루즈한 부분은 없었다. 특히 김규평을 연기한 이병헌의 절제된 분노와 절망의 표현은 스크린 속 주인공과 시청자를 공명시키기에 충분했다.

    단, 다소 민감한 부분에 픽션이 들어갔다는 점을 유념하고 상영관에 들어가 감상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달걀쓰 평점   ●●●●[4.0]

    "영화만 보고 끝내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 영화"
    "원작자가 말한 20%의 픽션을 찾아내는 것도 쏠쏠한 재미"

     

     

     

     

     


    사족


    1. 이 영화는 김충식 교수가 동아일보 기자 재직시절 2년 2개월간 연재한 기획 기사를 한데 묶은 동명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밑그림으로 했다고 한다. 원작은 880쪽에 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스크린에 옮긴 분량은 단 40일 정도의 스토리라고 하니 원작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은가?
    2. 원작자인 김충식 교수가 직접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느낌을 연합뉴스 기사 <원작자가 본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밝혔다. 한 번 읽어보고 영화 스토리와 실제 이야기 사이의 간극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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